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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섬 · 폐지된 도시 |
청산도의 자치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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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주시 | |
외국어명칭 | Sanju City |
한문명칭 | 山州市 |
광역자치단체 | 청산도 |
면적 | 103.8㎢ |
인구 | 512명 |
인구밀도 | 4.93명/㎢ |
상징 | |
시화 | 각시원추리 |
시목 | 꽃댕강나무 |
시조 | 제비 |
슬로건 | 기대사는 산주, 기대되는 산주 |
정보 | |
지역번호 | 05 |
도시코드 | SJU |
클럽 | NEWBIE CLUB |
마일스톤 | |
창립자 | Kombi |
시장 | Kombi |
등록일 | 2024년 05월 18일 등록 192일째 |
산주시(山州市, Sanju City)는 청산도의 기초자치단체이다.
역사
설정상 역사
조선시대 때 산주는 중구와 인산구 지역이 산주군, 각산구 지역이 답지군이란 이름으로 별개의 고을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중 산주군은 저수지를 두고 광범위한 면적의 목화 농업이 가능하여 예로부터 인정받는 면직물의 본고장이었으며, 답지군은 숭유억불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그 행적을 남긴 사찰이 위치하였다.
본래 가까우면서도 구별되는 정체성을 가졌던 두 지역은 총독부의 부군면 통폐합에 의해 두 지역이 산주군이란 이름으로 묶이게 되면서 처음 현재와 같은 영역을 갖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최초로 철도가 깔리고 양질의 면직물과 곡물의 본격적 수탈이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방적 공장 등이 세워지며 본격적인 인구 증가를 겪게 되었다.
해방을 거치고 난 뒤, 일제시대 이전까지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던 두 지역은 1947년 현재의 중구와 인산구 일부(당시 산주읍)이 산주시로 승격되고 잔여 지역이 답지군으로 명명되며 다시 나뉘게 되었다. 답지군이 일제 이전의 영역 그대로 돌아가지는 않았으나 정체성이 다르고 자체적인 공단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하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인구가 몰리던 산주시에서는 주택 공급을 위해 판자촌을 이루었던 빈민들을 쫓아내고 철거 및 개발을 강행하였고, 이를 피해 이주한 철거민들의 인구가 어떠한 이유로 집계되지 않으면서 답지군은 승격 자격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옛 산주시는 공단에 입주한 공장에서 시작하여 성장한 기업의 본사가 많아 시청에서부터 역전까지의 대로변에 즐비할 정도였으며, 이로 인해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상권이 형성되며 90년대 초반부터 패션의 메카로 불리게 되었다. 옛 답지군은 경공업 위주의 공단이 주류였으나 성장한 기업들이 사업을 확장하며 보다 경제성 높은 중공업을 바라봄과 동시에 군에서도 해당 산업을 육성하는 등 민관협력이 매끄럽게 이루어져 지역과 공단, 기업의 가치를 드높이게 되었다.
1992년, 산주시와 답지군은 도합 50개 단지에 육박하는 대규모 주택 공급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민간 건설사의 자체적인 주택 공급에 맞물려, 1995년 도농통합으로 인해 산주시와 답지군이 하나된 해에 역사적인 인구 증가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97년 외환 위기는 산주의 이름난 기업들을 모두 쓸어갔는데, 산주의 향토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상권과 공단은 활기를 잃었으며 다수의 기업들이 살아남은 대기업에 팔리며 산주시민들의 자존심을 짓밟기도 하였다. 당연하게도 모든 기업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주의 상공업이 공허해졌음은 반박하기 어려운 사실로 여겨진다.
2000년대가 들어서면서 산주는 회복을 지향하며 노후 지역의 뉴타운 지정이나, 역전의 낡은 시장을 새로운 업무지구로 만드는 등 시 차원에서 전반적 재개발을 도모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대 이후로는 도시 전반에 활기를 되찾으며 지자체 주도가 아닌 민간의 개발이 점차 많은 비율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산주는 현재 점차 민간의 개발이 과반을 차지할 수 있도록 시정을 도모하고 있다.
인구
산주시 인구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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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512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