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대학교 시그니처 국영문 하양.svg
학교 정보
캠퍼스 역사 상징
학부 대학원 재단 입시
관련 기관
백양대학교의료원
(도원·들안·함학·화명)
백양대학교 교육협력 해성병원 중앙도서관 백양대학교박물관

역사

  • 2020년 5월 - 백양대학교 설립
  • 2021년 8월 - 동신캠퍼스 설립 인가
  • 2021년 9월 - 함학캠퍼스 설립 MOU 체결
  • 2022년 7월 - 함학캠퍼스 설립 취소

설정상 역사

백양대학교w.svg
백양대학교의 역사
1868~1885 1886~1905 1905~1915 1915~1917 1917~1946 1946~1955 1955~현재
그레이엄성경학교 해신학당 해신학교 대학부 온주기독교대학 백양전문학교 백양전문대학 백양대학교
1885 1886~1913 1913~1917 1917~1946 1946~1955
구중원 구중원의학교 그레이엄
연합의학교
그레이엄
의학전문학교
그레이엄
의과대학
  • 해신학당과 백양전문학교

백양대학교의 시초는 1868년 미국인 선교사 로워드 그레이엄의 성경학교로, 조선에 복음을 전하러 온 그레이엄은 해강도 온주시에 작은 교회를 세우고 성경과 영어를 가르친다. 이는 성경학교로 발전하게 되었고 1886년 '해신학당'이 세워진다. 그레이엄성경학교는 공식적인 교육시설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추후 백양대학교로 발전할 해신학원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해신학당은 백양대학교 재단인 학교법인 해신학원의 유래가 된다. 이후 해신학당은 현재의 중고교가 통합된 형태인 중학교를 설치하였고(현재의 '해신중학교'와 '해신고등학교') 1905년 '해신학교'로 개칭한다. 그레이엄은 한국에 대학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1915년 미국 장로교 재단들의 도움을 받아 해신학교 대학부의 형태로 '온주기독교대학'을 설립한다. 미국 기독교 재단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교명에 '기독교'(Christian)가 들어갔고 이는 계속적인 지원으로 이어졌다. 온주기독교대학은 대외적으로 사용되는 영문 명칭에 가까웠고 내부적으로는 해신학교 대학부라는 명칭이 계속 사용되었다. 1917년 일제로부터 전문학교로 인가받아 '백양전문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일제의 엄격한 교육 정책으로 대학 설립이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으로, 해방 전까지 4년제 종합 대학으로 승격되지 못하다가 해방 후 1946년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백양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 구중원과 그레이엄의학전문학교

같은 시기 역시 미국인 선교사인 핸리 록스웨어는 조선 왕실에 청하여 1885년 근대식 병원인 '구중원'을 설립한다. 다음 해에 록스웨어는 그레이엄을 초청하여 구중원 운영에 힘써줄 것을 요청한다. 이후 구중원의 부속 학교로 '구중원의학교'가 세워지고 조선인에게 의학을 가르치게 된다. 록스웨어는 미국인 의사들에게 요청해 구중원과 의학교를 확장하는 등 구중원 운영에 힘쓴다. 그러나 1895년 록스웨어가 사망하고 이후 구중원의 운영에 왕실과 큰 의견 차이가 생기게 된다. 구중원의 운영에 크게 관여하며 의학교에서 영어와 기초과학을 가르치던 그레이엄은 구중원을 왕실에서 독립시키고자 하였다. 그레이엄은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계에서 한국행에 뜻이 맞는 선교사들을 모집함과 동시에 미국 장로회로부터 지원을 확정받고 돌아온다. 그 후 왕실과의 긴 협상을 통해 1899년 구중원을 왕실에서 독립시키게 된다. 이 배경에는 한국사에서 굵직하게 남아있는 여러 사건들로 인해 어수선한 정국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레이엄의 친형이자 미국에서 피아노로 유명한 재벌이었던 어니스트 그레이엄은 동생의 뜻을 돕기 위해 구중원에 거액의 후원금을 전달한다. 그레이엄은 의학교 건물을 신축하고 동신동에 병원을 신축했고, 후원자인 친형의 이름을 딴 '그레이엄병원'을 1905년 개원한다. 이렇게 '그레이엄'은 백양대학교에서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이름으로 길이 남게 되었다. 1912년 그레이엄이 사망하고 구중원의학교와 해신학교의 교장을 동시에 맡게 된 로즈와일드는 1913년 구중원의학교의 이름을 '그레이엄연합의학교'로 변경하였고 1917년에는 '그레이엄의학전문학교'로 변경했다. 백양전문학교와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대학 승인을 받지 못하다가 해방 후 1946년 마침내 '그레이엄의과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 백양대학교로의 통합

두 학교 모두 초기에 미국 장로회의 지원으로 운영되었다. 그레이엄과 록스웨어, 로즈와일드 등 다수의 선교사가 두 학교의 설립에 동시에 관여하였으며 강의했다. 따라서 두 학교는 뿌리와 역사를 같이 했다는 데에서 의미가 깊었다. 그레이엄이 사망하고 양교의 교장을 겸임한 로즈와일드는 두 학교를 통합하기 위한 협의체를 발의했고, 그레이엄의 친형이자 미국 장로회 선교부 소속이었던 어니스트 그레이엄의 도움이 컸다. 통합을 전제하고 기부금을 받아 동신동에 교지를 마련했고 이에 통합 전부터 두 학교는 부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제의 간섭으로 번번이 실패하였고, 한 지붕 두 학교의 체제는 한동안 유지되었다. 광복 이후 다시 통합을 추진했으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휴전 후 본격적으로 백양대학교-그레이엄의과대학 통합 협의회가 발족되었다. 협의는 원활하게 진행되어 그레이엄의과대학이 백양대학교 부속 의과대학과 통합하는 형태로 협의되었고 마침내 1955년 두 학교는 '백양대학교'로서 통합하게 된다.

백양대학교함학병원의 역사

1915년 캐나다의 장로회는 해강도 함학시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그레이스장로교병원'을 설립한다. 병원은 확장을 계속하며 해방되기까지 운영되었지만 6.25전쟁의 여파로 1950년 문을 닫게 된다. 휴전 이후 병원을 다시 운영하고자 하였으나 재정적인 이유로 인해 실패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학교법인 해신학원과 백양대학교 이사진은 기독교 선교와 해강도 의료 역사에 관련이 깊은 그레이스장로교병원을 인수하는 데에 의견을 맞추고 1955년 '백양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함학기독연합병원'으로 개칭해 인수했다. 2015년에 병원 설립 100주년을 맞아 병원 이름을 다른 부속 병원 이름과 같은 형식인 '백양대학교함학병원'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