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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그룹
계열사
지주회사 금산
건설 금산건설 (더 트라움 단풍아파트)
유통 금산리테일 (KS24 | 율가커피 | 우소동면 | 피자엔치킨 | Burger's | KEEPPLUS | 한성가)
전자 금산전자 | 금산세미컨덕트 | 금산디스플레이
제조업 아원제지
통신 금산네트워크
중공업 · 승강기 금산중공업 (금산철강 금산엘리베이터)
에너지 · 정유 금산에너지 | 금산정유
스포츠 금산스포츠 (금산 크로스 금산 썬더코스트 은산 FC)
관계사
산청금융그룹 | 프레지오조
금산
KUMSAN
파일:리뉴얼 금산로고.png
개요
명칭 금산
영문명칭 KUMSAN
설립일 2019년 10월 15일
본사 청산도 은산시
업종 지주회사
소속 금산
소속 광역단체 청산도

금산은 플레이시티 블록 기업집단이고 지주회사이며, 이 위키 문서는 지주회사금산에 관한 문서이다.

계열사

건설업 관련 계열사. 채풀건설 인수.
전자제품,반도체 제조 주력 계열사. 채풀전자와 CS세미컨덕터를 인수.
  • 금산리테일
유통 및 소도매를 담당.
구 금산텔레콤.이동통신 관련 계열사.라온네트워크 인수후 금산 네트워크로 사명변경.
에너지 · 발전 관련 계열사.
금융 관련 자회사.
  • 금산중공업 · 금산엘리베이터
중공업,엘리베이터 관련 계열사
  • 금산택배
구 한성그룹 소속 한성신속택배. 2021년 8월 인수.
  • 학교법인
은산공업대학교의 법인재단.
  • 스포츠
2022년, 블록야구리그의 참가된 금산 크로스이다.

역대임원

사장

  • 제 1대 : nendo14 (20??~)

가상 설립역사

* 가상역사는 가상역사일 뿐입니다. 본 내용에는 어떠한 인물이나 기관, 단체등의 명칭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연의 일치입니다.

1대 정신적 지주 회사인 ‘한성그룹’ 화장 덕지승[1]이 1961년에 자본금 2000만원으로 설립한 ‘한산건설‘을 설립한 이후 1966년 건설 붐이 일어나자 자본금 1500만원에서 23억으로 순식간에 대기업으로서 명성을 펼친다. 1972년 처음으로 해외의 대형 호텔 건설권 따고선 세계의 이목을 받으면서 주가가 상승했다. 이에 따라 한산건설을 한성건설로 바꾸었고 '한 우물만 파면 안된다'라는 그의 사명에 따라 전자 산업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 이때 이사진들이 반대를 많이했었다. 하지만 그의 결심에 못이겨 시작한 사업이 '한성전자' 였고 이는 성공이였다[2] 1979년에는 식료품유통기업 '한성식품'추가로 출범하였다. 1980년에는 우선반도체,십오건설,세직건설 등 기업을 독점하다시피 인수를 했다.[3] 1982년에는 인수의 성공인지 한성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2단 낸드 플레시를 만들었다. 1992년 제XX대 대통령 출범 이후 '부정부패비리단속'을 이행하기 위해 국내 기업의 장부와 문서를 강제 압수, 1992년 초여름, 검찰이 부정부패비리 기업을 공개 하였다. 그중에는 한성그룹도 포함됬고 한성그룹은 1967년 정부의 비리문제 1건[4]으로 인해 단속에 걸렸고 2일뒤 한성그룹 고위 내부자라고 하는 사람이 무리한 인수로 인한 자본금 부족, 그리고 독점방지법에 의해 강제 분해가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는 루머를 언론에 퍼트렸고 언론은 조사도 안하고 이를 토대로 특보로 내보냈다. 이에 따라 한성그룹 해명도 못 하고 주가는 곤두박질을 치고 한성그룹과 자회사들은 위기에 맞게 된다. 주가가 곤두박질을 치고 난 하루 뒤 한성그룹은 해명하기 위해 덕지승과 어느 중소신문사와 함께 진실을 말했다. '우리의 문제는 1967년의 정부 비리의 문제였지 무리한 인수와 자본금 부족, 그리고 독점문제는 없었으며 우리는 대법원으로부터 어떠한 서류도 오지 않았다'라고 설명하며 루머를 해명하였으나 약간의 반등도 없이 이미 루머를 사실로 아는 사람들은 믿지도 않았고 오히려 주가가 떨어졌다. 반등이 없자 한성그룹은 사기꾼과 각 언론사를 고소 고발 했으며 1995년 봄, 대법원까지 승소가 결정 났기 때문에 한성그룹은 '어둠의 2년'이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 이에 따라 사람들도 점점 가짜뉴스로 받아들었고 주가도 다시 올랐다. 그렇게 다시 회복되는 순간 1998년 여름, '국내 달러화 대폭등이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인해 한성그룹은 허리가 꺾일 뻔했다. 한성건설, 한성전자가 거의 수입[5]에 의존했기 때문에 타격이 엄청 심했다. 이 사건은 1999년 봄까지 이어졌으며 어둠의 2년 때문에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나락을 갔던 한성그룹은 어둠의 2년을 생각하며 잘 버텨 내었다. 그렇게 '국내 달러화 대폭등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종결된 이후 2007년까지 잘 경영했다. 2008년에는 1997년부터 진행해오던 '세계최초 16단 낸드 플레쉬'를 만들었다. 그러던중 2009년 덕지승이 자신이 간암을 이사진들에게 말하였고 이사진을들 긴급총회를 열어 2009년 겨울부터 후계자를 찾게 된다. 3번의 상속싸움, 37번의 긴급총회, 연속 19번의 하락장...2012년 겨울 덕지승은 간암으로 사망하고 2013년에 정부은행이 개입하고 나서부터 진전이 생겼다.[6] 정부은행은 덕지승의 마지막 유언을 유족에게 공개했고 내용은 ‘돈은 사람을 좌우하며 죽으면 쓰지도 못하는 한 낱의 종의 쪼가리이다. 나의 가족들은 나의 남은 유산으로 죽기전까지 잘 살며 기업은 국가를 위해 매각하자.’라고 써있으며 유족은 이 유언으로 매각에 승낙을 했다. 2015년, 정부은행은 ‘한성그룹 국내 투자자 중’에서 매입할 사람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았다.[7] 그러던 중 2018년 한성그룹을 투자했었던 전 투자자 지내다[8]씨는 이러한 소식을 듣고선 매각에 신청. 정부은행은 승낙했다. 그런데 그냥 매각만 한 줄 알았던 한성그룹은 정부은행에 팔기 전에 덕지승의 부탁이 있었다. ‘내가 죽고 이 기업을 매입하는 자는 기업 이름을 바꾸어도 되지만, 한성그룹의 역사를 통합해서 쓰길 바라고, 부디 다시 어둠의 2년을 보내지 말라..’라고 하며 정부은행과 대화를 했던 것 이였다.. 지내다씨는 이 부탁을 승낙하고 몇몇의 투자자를 받아서 2019년 10월 15일 한성그룹에서 금산종합그룹으로 명칭이 바뀐 채 출범하게 되었다. 2022년에 들어서 금산종합그룹에서 금산으로 다시 명칭이 바뀌었다.

여담

2022년 3월쯤에 산청금융그룹을 제외하고 금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 1937~2011
  2. 1977년~
  3. 이때 현금 170억
  4. 수도권 시청 건설권
  5. 자재
  6. 정부은행이 개입한 이유는 나온다
  7. 이익에 비해 손해가 심하기 때문
  8. 志能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