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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4일 (토) 12:10 판

이 문서는 가공의 국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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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국
栗島國 Yuldo
이미지 이미지
국기 국장
만인이 누릴 수 있도록
율도 위치.png
상징
국가 율도 찬가
국화 밤꽃
국조 까마귀
역사
신석기 부락 형성 B.C. 10세기
국가 형성 2세기
신라에 복속 563년
신라로부터 독립 620년
백제와 왕실결혼 645년
율도 전투 662년
사건 년월일
사건 년월일
지리
수도 율도(쿠리시마)
면적 3,935.29㎢
접경국 조선, 일본
행정 구역 경, 부, 현, 정
인문 환경
인구 0명
인구밀도 0명/㎢
공용어 한국어, 일본어, 광둥어, 영어
공용 문자 한글, 한자, 히라가나, 가타카나, 로마자
종교 국교 없음(정교분리)
무종교n%, 유교n%, 불교n%, 가톨릭n%, 개신교n%, 신토n%
군대 율도국군
정치
정치 체제 불명
국가원수
통령



개요

율도는 시티즈 스카이라인을 바탕으로 한 앑의 가상 국가이다. 허균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홍길동전의 등장하는 율도국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율도의 시티즈 맵은 한반도 남부의 고흥반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앑이 시티즈 신규 도시를 만들기 위해 구글어스를 둘러보던 중 눈에 들어와 선정하게 되었다.

상세

한반도 남부와 일본 사이에 위치한 도시국가이다. 조선과 일본, 중국과 서양 국가들과 무역을 하는 주요 무역국이며, 무역국가답게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주요 민족으로 살고 있다.

상징

국호

율도의 정식 국호는 율도국(한자: 栗島國, 영: Yuldo)이다. 율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율도군도와 율도군도의 본섬 율도에서 찾을 수 있는데, 과거 율도에 참나무와 밤나무가 많아 율도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국기

[[파일:|300px]]
율기

율도의 국기 율기는 율도의 국체를 상징한다. 국기에 국장이 있다.

국장

[[파일:|300px]]
국장

율도의 국장은...

기타 상징

율도의 국가 율도찬가는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서양와 교류하며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음악의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율도의 국화는 특이하게도 밤꽃인데, 이는 단순히 밤나무가 국가의 상징이라 밤꽃이 국화가 된 것이다.

율도의 국조는 까마귀인데, 고대 신화로부터 내려온 전설과, 율도에 다수 서식하는 까마귀로 인해 국조로 결정되었다. 다수의 국가에서는 까마귀가 흉조를 상징하지만, 율도에서는 길조이다.

역사

기원전 10세기 한반도 유래 도래인이 정착하여 선사 문화가 발달했다. 이후 삼한과 야요이,한과의 중간 무역으로 점차 국가로 성장했다.

2세기 경 가야의 영향을 받아 철기를 도입하고,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백제가 강해진 4세기 경에는 백제-왜 중간무역으로 크게 성장하며 백제 영향권에 들고, 백제 문화를 수용하여 큰 발달을 이루었다.
이후 진흥왕의 원정으로 정복당하여 일시적으로 신라에 복속되었다. 백제 무왕 때 다시 백제의 영향이 커져 신라로부터 독립하였고, 신라 연안지역에 대해 율도구의 약탈이 잦아졌다.
백제 의자왕때, 백제와의 왕실결혼으로 백제와의 관계가 돈독해졌다.

7세기, 한반도의 삼국통일전쟁으로 백제가 혼란에 빠지자 백제 도래인이 다수 건너와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하였으며, 일부 지도층도 율도로 망명했다. 이후 당군의 백제 상륙 직전 백제 지도층이 율도로 망명하였다. 백제가 황산벌에서 패배한 이후 나당연합군은 백제 소탕을 위해 율도까지 내려왔다. 백제 수뇌부는 왜에 지원 요청을 하여 왜의 지원군 파병으로 나당연합군과 백제 잔군, 율도군, 왜 지원군이 충돌하는 율도전투가 벌어졌다. 율도전투는 백제의 승리로 돌아가 율도는 백제 유민을 흡수하며 백제의 후예를 자처했다.[1] 율도전투의 승리로 신라 내에서 백제 부흥운동이 격화되어 신라는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부진하였고,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의 아들중 한 명은 신라와의 전투로 전사하였고, 다른 한 명은 숙청되었다.[2]

자연 환경

율도의 본토인 율도군도는 율도, 대마도, 제도, 상오도, 하오도의 주요 다섯 섬과 조그마한 부속 도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문 환경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고대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백제 도래인의 후손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기에 백제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풍습

군사

기타

율도의 초기 설정은 맵의 원본이 고흥반도인것을 따라 한반도 남부 고흥반도에 위치한 국가로 설정했지만, 역시를 설정하면서 도저히 혼란의 역사에서 독립국으로 살아남는게 불가능해 폐기하고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군도를 만들어 설정하는것으로 바뀌었다.

이전 설정은 이 문서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보시오

  1. 일본은 율도의 존재로 현실보다 발전 속도가 빨랐다. 그 때문에 왜의 지원군은 현실의 백강전투보다 강력한 지원군을 보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율도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2. 연개소문 사후 연개소문의 세 아들의 내분으로 고구려 멸망이 가속되었기 때문에 연개소문의 아들을 한 명만 남기고 죽임으로서 고구려가 현실보다 더 오래 버티어 율도가 다시 신라에 복속되지 않고 독립국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설정이다.